설교요약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지혜
담임목사인 저에게는 부교역자들을 좋은 목회자로 훈련시키는 것도 중요한 숙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좋은 본이 되어야 하겠지요. 제가 평소에 부교역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기능적인 영역이 아닙니다. 기능과 관계된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한 가지인데, 그것은 ‘힘 빼기’입니다.
간혹 부교역자들에게 “이제 기도에 힘이 좀 빠졌네요.”라고 말해줄 때가 있습니다. 듣는 분들은 “목소리가 작다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감이 없다는 뜻인가?”하고 생각하곤 하지요. 하지만 힘이 빠졌다는 것은 사람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기도에서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로 바뀌어 간다는 뜻이랍니다.
이것은 기도뿐만 아니라 목회의 모든 영역에 해당합니다. 설교를 통해 교우들을 감동시키겠다는 생각, 인정받겠다는 욕심, 설교자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경우 등은 모두 설교자가 조심해야 할 태도입니다. 상담할 때도 목회자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답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강박이 교우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해답을 찾기에 골몰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오덕호 목사님(한일장신대 총장)은 목사의 정체성을 ‘슈퍼맨인가 사도인가?’라는 물음으로 정리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대형화를 추구하면서 화려한 스펙과 엄청난 능력을 가진 목회자를 선호합니다. 박사학위는 기본이요 설교도 잘하고, 교회도 부흥시킬 수 있고 거기에 좋은 외모까지 갖춘 분을 찾습니다. 문제는 목사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교우들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서가 말하는 목사는 교회나 목회자의 기대처럼 슈퍼맨이 아닙니다. 사도입니다. 사도란 한마디로 심부름꾼이지요.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기 자랑이나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자도 아닙니다. 오직 보냄을 받은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심부름을 하는 사람일 뿐이지요. 그러니 힘을 빼야 하지 않겠어요?
자신을 사도로 소개하는 바울을 보세요. 그는 길리기아 지방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이며 바리새인이자 존경받는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인물이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가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는 길에 경험한 주님과의 신비한 만남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 된 후 이름을 바꾸고 스스로 메시아가 보낸 사도임을 선언합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자신 있게 정의를 행사하던 바울이 모든 힘을 빼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된 겁니다. 그런데 그가 전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슈퍼맨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뜻은 무력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고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됩니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정의의 무력함을 보는 동시에, 힘이나 폭력에 기대지 않는 진정한 정의를 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이 정의는 법을 지킴으로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의는 은혜 또는 선물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나 어떤 자격 같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랍니다.
세상의 지혜와 능력은 힘과 권력에 기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십자가에서 나타납니다. 우리 삶에서 ‘힘을 뺀다’는 것은 무기력해 보일뿐만 아니라,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힘 빼기에 인생과 신앙의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또 한 번의 고난주간을 맞으며 십자가의 지혜와 능력을 깨닫고,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노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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