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
얼마 전 ‘말티즈’라는 품종의 개를 기르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얼마나 영리한지 찬송을 시작하자 목을 길게 빼고 흉내를 내더니,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되자 다리를 쭉 뻗고 납작 엎드려 있는 겁니다. 예배를 마친 후, 사람보다 개가 더 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라는 단어가 ‘납작 엎드리다’라는 뜻이기 때문이지요. 이 녀석이 “예배란 이렇게 드리는 것이야!”하고 온몸으로 보여준 겁니다.
예배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제한성을 인정하고 납작 엎드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합니다. 예배 시간에도 많은 생각이 교차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생각의 한복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일용할 양식’에 대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작년과 재작년에도 한 차례씩 본문으로 선택하여 설교하였지만, 해마다 적어도 한 차례 씩은 이 본문을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일용할 양식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양식이 해결되지 않은 배고픈 자에게 하늘의 양식은 공허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여 오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메시지’라는 영어성서는, “우리에게 끼니마다 충분한 식사로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소서.”라고 번역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끼니마다 충분한 식사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기서 말하는 충분한 식사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랍니다. 설령 우리에게 충분한 음식이 있다 하더라도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거나, 함께 할 이가 없다면 좋은 식사가 될 수 없을 겁니다.
먹는 것을 왜 한자로 ‘食事’라고 할까요? 먹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겠지요. 그러므로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잠언 17.1)는 말씀을 기억하며, 끼니마다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그 날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설교와 관련한 경험이 떠오릅니다. 성경을 읽다가 깊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는데, 간혹 그 깨달음을 아껴두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나중에 설교하기 위해 간직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 경험상 그렇게 미루어둔 깨달음은 다시 살아나지 않더군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내일에게 맡기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양식을 아끼지 말고 누려야 합니다. 내일에 대한 준비와 염려로 오늘을 누리지 못한다면, 내일도 같은 허기가 반복될 것입니다. 오늘의 은혜로 내일을 살려고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대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인간의 조건을 밝혀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 의하면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실존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인간이 하늘의 양식뿐만 아니라, 땅의 양식도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십니다. 사람은 빵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빵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땅의 양식과 더불어 하늘의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하늘의 양식은 ‘소망’의 양식이 아닐까요? 우리는 꿈꾸는 것이 사치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버거워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가 땅만 보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시험에 빠지는 것이며, 악에게 지는 것이 아닐까요?
이사야는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날마다의 양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누리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날마다 강건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아멘!”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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