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대림절 촛불을 켜며
초대교회 공동체는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샬롬)을 빌며 서로를 축복하고, 하나님나라를 대망(마라나타)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라나타’라는 인사는 끊어 읽기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란 아타’는 “주께서 이미 오셨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마라나 타’는 “주여 오시옵소서!”,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바라는 신앙고백인 겁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대림절엔 보라색 촛불을 켜고 예배하였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는데, 또 기다린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은 교회력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번째 절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면서 새 해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이란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시한부종말론’이 그것입니다. ‘종말’은 문자적으로는 마지막이란 뜻이기에 많은 이들이 마지막 때에 관한 교리로 오해하곤 하는데, 성경의 종말론은 창조의 목적에 대한 교훈입니다. 미래에 대한 실마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신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 주는 것이지요.
구약의 종말론은 타락 이후의 비극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세계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신약의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나라가, 성령 안에서 새 창조가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서의 종말론은 언제나 지금 여기를 향하고 있음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말론을 정반대로 이해하여 현실을 외면하고 심지어 포기하는 도피처로 삼고 있습니다.
한 신문 칼럼에 의하면,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이자 국민의 절대다수가 하나님을 믿는 미국은 경제규모에 비해 불평등지수와 범죄율이 세계적으로 높고 복지정책과 행복지수도 하위권인 반면, 유럽연합국가 가운데 ‘신을 믿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30% 이하에 머문 노르웨이나 덴마크, 핀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나 복지수준은 물론 기대수명과 평등지수, 공무원의 청렴도, 행복지수 역시 최상위권이랍니다. 신이 없는 세상은 부도덕함과 사악함이 넘치고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이들 국가들은 해외원조에도 적극적입니다. 약자를 돕고 자선을 행하고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보편종교의 가르침을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들이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 반면 세계 곳곳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성전(聖戰)을 외치며, 폭력과 살육을 일삼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국가들이 평화와 복지를 실현하고, 반대로 종교국가들이 전쟁과 폭력을 부추기는 현실에서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로 끝나는 칼럼입니다.
이 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종말이해와 기복주의에 물든 한국교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참된 종말신앙으로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가지 않는 종교인일수록 기복신앙에 매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을 직면하며 노력하지 않고 부정하며 도피하는 것은 진정한 종말신앙이 아닙니다. 주님은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마치 주인이 혼인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대림절 첫 주일! 우리 삶의 자리에서 소망의 촛불을 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님의 복을 이 땅에서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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